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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정보

의류건조기 사용후기

열공마배미 2023. 12. 29. 10:54

식구가 다섯이지만 여태 의류건조기를 사야겠다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 형편도 형편이지만 건조대에 널어두면 잘 마르는 빨래를 굳이 큰돈 들여 의류건조기를 살 필요성을 못 느꼈었다. 그랬던 것이 시간이 갈수록 상황이 달라졌다. 건조대 한 줄에 두 개는  널 수 있었던 것이 아이들의 몸이 자라면서 한 줄에 하나 밖에 널지 못하는 상황까지 왔다. 게다가 비가 잦은 장마철에는 이틀, 삼일이 지나도 빨래가 바짝 마르지 않았다. 제습기를 돌려가면서 빨래를 말렸지만 역부족이었고 이대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어 큰맘 먹고 시중에 나와있는 제품 중 가장 용량이 큰 의류건조기를 구매하게 되었다. 

 

 

 

 

드디어 설치하는 날. 설치기사님이 설치를 하시곤 웃으시면서  말씀하셨다.

"건조기 처음 사용하시죠? 사용해 보시면 신세계를 경험해 보실거예요."

신세계? 예전에 의류건조기를 샀다고 자랑하던 친구도 그 말을 했던 것이 생각났다. 기사님이 가신 후 마르지 않아 건조대에서 SOS를 외치고 있는 옷들을 건조기에 넣고 돌렸다. 처음 돌려보는 거라 진짜 바짝 말려지는지 궁금해 몇 번을 왔다 갔다 하며 건조기 안을 보았다. 드디어 종료 음악이 울렸고 내 모습을 지켜보던 아이도 많이 궁금했는지 쪼르르 와서 내 옆에 앉았다. 건조기 문을 열자 따뜻한 온기가 확 퍼졌다. 난 옷을 꺼내 다 말랐는지 일일이 확인해 보았다. 어찌나 뽀송뽀송하던지... 건조대에 마른오징어처럼 말려졌는 빨래하고는 차원이 달랐다. 기사님이 몇 가지 주의사항을 말씀해 주신 것이 생각나 곧바로 물통을 비우고 먼지통도 확인하였다. 세탁기 돌린 옷에서 이렇게나 많은 물이 나온 것도 놀랐지만 먼지통을 보고는 정말 건조기를 잘 샀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번 돌렸을 뿐인데 무슨 먼지가 그렇게나 많이 나오는지. 그동안 이 많은 먼지가 옷에 붙어있었고 우리 코로 들어갔었다고 생각하니 끔찍했다. 설치기사님이나 친구의 말처럼 신세계였다. 한동안은...

맞다. 한동안은 그랬다. 많은 빨래를 널 시간을 덜어주고 비 올까 노심초사하는 것도 없으니  건조기에게 고맙기까지 했다. 그런 건조기가 대견스러워 매번 건조기의 물통을 비워주고 먼지통도 깨끗이 청소해 주었다. 그러나 그건 오래가지 못했다. 편리해서 나의 노고를 덜어주던 고마움은 희미해지고 몇 번 안 돌렸는데 꽉 차버리는 물통 비우기가 귀찮아졌다. 먼지는 하루에 한 번 청소해 주던 것이 주기가 점점 길어져 어느 날엔가는 3주가 되었다. 그렇게 나에게 의류건조기는 세탁기 같은 존재가 되어버렸다. 진짜 전자제품으로...

 

 

 

옛날 어릴 적 짤순이가 있었던 것이 생각난다. 그땐 세탁기 따로 옷을 짜주는 기계가  따로였던 걸로 기억한다. 그때 엄마도 나처럼 그랬을까? 엄마는 가끔 지금이 너무 편해졌다고 말씀하신다. 내가 아기 때 단칸방에 살며 천기저귀를 다 손빨래를 해서 방안을 가로지르는 빨랫줄에 널었다고 하신다. 잠도 물론 그 하얀 천기저귀를 보며 잤다고 하셨다. 지금 생각하면 상상도 못 할 일이다. 집에 세탁기가 없다면 저 많은 빨래를 언제 다 한단 말인가... 빨래하다가 한나절이 다 갈 것 같다. 그럼에도 예전에 부모님들은 어떻게든 살아가셨다. 오히려 지금의 나보다 더 많은 일을 하셨다. 세상엔 당연한 게 없는데 원래 그랬던 것처럼 고마움을 잊고 살아가는 것 같아 의류건조기를 보며 반성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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