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주말아침 딸아이 폰이 울렸다. 딸아이 절친 전화였다. 많이 심심했는지 우리 집에 놀러 가도 되냐고 물어보았다. 나는 내심 기쁜 마음을 감추고 놀러 오라고 했다. 오늘하루 딸아이와 뭘 하며 놀까 고민이었는데 친구가 놀러 온다니 고민을 덜 수 있어 좋았다. 집에 도착한 아이절친은 곧 딸아이와 핸드폰을 가지고 놀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뭐가 안되는지 계속 엄마에게 전화해 잠금으로 해놓은 걸 풀어달라고 말한다. 몇 번의 다짐과 약속도 하는 모습을 보니 예전에 내 모습이 생각났다.
난 원래 어려서부터 게임에 관심이 없었다. 심심해서 남동생과 몇 번 해보려고 시도했지만 재미없었고 실력도 형편없어 더 안 하게 되었다. 그래서인지 지금도 게임에 대해선 다른 사람과 공감할 수 있는 것이 없다. 그랬던 것이 결혼하고 아이가 생기면서 문제가 불거지기 시작했다. 딸아이 위로 오빠가 둘 있는데 호시탐탐 게임을 하려고 했다. 책이나 매스컴에서 게임에 대한 부정적인 내용을 접한 터라 게임하는 모습이 더 보기 싫었다. 매번 규칙을 정하고 게임하는 시간을 정해두었지만 지켜지지 않았다. 요즘 아이들 말로 '몰폰'이라는데 몰래 폰을 하다 들킨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래서 돈을 들여 앱으로 아이들의 폰을 강제적으로 관리하기도 했다.
하지만 근본적인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다. 내가 바라는 것은 스스로 게임시간을 조절하면서 자신이 해야할 일을 하는 거였는데 아이들은 마치 게임을 하기 위해서 자신이 해야 할 일을 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리고 게임이 허락된 시간에는 주위의 소리를 인지 못할 정도로 게임에 몰입했다. 할 일을 하고 하는데도 난 그 모습이 너무 보기 싫었고 내 이런 마음 때문인지 아이들과 자꾸 트러블이 생기기도 했다. 난 엄마이고 싶지 감시관이 되기 싫은데 자꾸 아이들이 날 감시관으로 만드는 것 같아 화가 났다.
난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청소년상담센터에 전화를 했다. 게임을 안 할 수 있는 방법을 알려고 전화한거였는데 그 상담사분은 나에게 아이와 같이 게임을 하면서 공감해 주는 것을 권해주셨다. 처음엔 황당했지만 상담사의 설명을 듣고 보니 문제는 게임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전혀 아이와 공감하고 있지 않는 것이 문제인 것 같았다. 갑자기 크리스마스에 뭘 하고 싶냐고 물었을 때 아이가 엄마랑 같이 게임하고 싶다고 말한 것이 생각났다. 아이 나름대로 자신이 재밌게 즐기는 게임을 엄마랑도 하고 싶어 말한 건데 그 마음을 못 헤아린 것 같아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 뒤로 몇 번 아이들과 마인크래프를 하려고 시도는 했지만 역시나 나에겐 무리였다. 나도 모르게 꾸벅꾸벅 졸아 아이들에게 실망감만 줬다. 어쩌겠는가 나에겐 게임이 진짜 재미가 없는걸...
문제에 둘러싸여 있으면 본질을 못 보는 것 같다. 난 게임이라는 것이 무조건 나쁘다는 고정관념에 사로잡혀 아이들의 행동들을 문제시했고 아이들의 마음을 보지 못했다. 사람의 심리는 어른이나 아이나 비슷한 것 같다. 못하게 하면 더 하고 싶은 것이 사람의 심리다. 그리고 이런 욕구가 달성되지 못하면 결국 음지로 들어가게 되는 것 같다. 거짓말을 하게 되고 숨어서 하게 된다. 게임에 대한 고정관념을 깨고 아이의 마음을 공감해주려고 하니 보인다. 요즘 게임은 그냥 게임이 아니다. 아바타처럼 가상의 공간에서 친구들과 만나서 게임을 즐긴다. 그곳에서는 나름의 규칙도 있다. 엄마 입장에서는 시간을 정해서 칼로 무를 자르듯이 게임을 중단하는 게 맞다고 생각하지만 아이들 입장에서는 매우 난처한 일이다. 팀을 나누어 재밌게 게임을 하는데 내가 빠져버리면 우리 편은 지게 된다. 그리고 친구들로부터 질타를 받게 된다.
예전에 우리와 지금의 아이들은 같지가 않다. 밖에서 가슴 터져라 술래잡기를 하며 뛰어노는 것은 거의 학교 안에서만 가능한 일이 되어가고 있다. 지금은 아이들이 놀려고 해도 다들 방과후 수업과 학원수업으로 각자 시간이 잘 맞지 않는다고 한다. 이런 변화에 아이들 나름대로 놀이문화로 자리 잡은 것이 핸드폰이 아닌가 싶다.
엄마에게서 허락을 받은 딸아이 절친은 핸드폰에 열중하고 있다. 말을 걸어도 핸드폰에 집중하느라 나의 질문에도 묵묵부답이다. 안 그러겠는가. 어떻게 얻은 기회인데... 난 게임에는 관심이 없지만 드라마는 정말 좋아한다. 다음 내용이 궁금해 죽겠는데 누가 시간의 가치를 운운하며 비난하거나 못 보게 한다면 기분이 많이 상할 것 같다. 그리고 호시탐탐 아무도 보지 않을 때 다음 내용을 보기 위해 애를 쓸 것 같다. 그런 맘이 공감돼서 그런지 요즘 난 아이들의 폰 사용에 그렇게 민감하지 않다. 중학생이 된 아이들은 처음엔 미친 듯이 게임만 하더니 어느 순간부터는 공부도 하고 게임시간도 스스로 조절해서 한다. 막내 딸아이는 아직 어려서 그런지 조절이 안 되는 편이다. 그래서 좀 사용시간이 길다 싶으면 다른 활동을 할 수 있도록 유도하고 같이 뭔가 할 수 있는 시간을 만들어보려고 한다.
지금은 마음이 편안하다. 내가 이제 더 이상 감시자가 아닌 것이 좋다. 아이들이 날 감시자로 만든 것이 아니고 내가 날 감시자로 만들고 있었다는 걸 이제는 아니까...